내연산이라는 이름은 어디서 왔나
금당탑기에 의하면 신라 진평왕이 견휜의란을 피해 이 골짜기에 은신
하였다 하여 내연(內延)이라 이름지었다고 하나 견휜과 진평 두 왕의
연대가 판이하며 진평왕때 이 사찰을 창건한 점 등 으로 미루어 보아
두왕의 이름을 혼돈한 듯하다.
음지밭등 부근 천령산 쪽 기슭에 제법 몇가구가 살만한터가 있어는데
구전에 의하면 여기에 신라의 왕이 추격하는 백제의 군사들을 피해숨
어 있었다고 하나 분명한 것은 신라의 어느 왕이 견휜의 무력팽 창시
대에 쫓기어 들어와 생명을 부지하였던 곳이라는 점으로 미루어 보아
내연산아라 개명했음직도 하다 하겠다.
원래는 스님들이 삼동석산이라 불러 내려오던 것을 보경사를 창건하
면서 중국의 종남산을 닮았다하여 宗南山이라 부르다 가 위와 같은
사연으로 내연산으로 개명된 것으로 보인다.
자연환경
내연산은 그 뿌리가 이 고장의 祖宗山인 매봉(815m)에서 시작된다.
팔각산.주왕산을 거쳐 기계의 운주산 .건천의 단석산 으로 내리달리
는 태백산맥의 줄령에서 그 한가닥이 동으로 내밀어 포항시의 죽장
청하.송라 3개면의 분수령을이루는 할아버지 산이 곧 매봉인 것이다.
여기서 북으로 되감아 치오르다가 해발(930m)되는 향로봉을 솟구치
고 다시 동북으 로 꿈틀이며 뻗어내 리다가 불쑥 멈춰 선곳.그천길
벼랑 아래에 羅代의 고찰 보경사가 열리고 있다.
남쪽으로는 마치 거북이가 엎드린 모습으로 소처럼순하게 생긴 옛날
에는 신구산(神龜山)이라 불리던 해발 775m의 천령산이 버티고 있
다.두 산이 서로가 다투듯 일궈놓은 장장 30여리의 깊은 계곡에는
12폭포와 28경 의 장관을 이루어 옛부터 이 고을에 부임하는 현감이
나 군수는 물론 고관대작이 며 문인거사들이 한두번쯤은 찾아들지 않
고서는 영남의 산수를 봤다고 나서기 부끄럽다는 말이전해질 정도로
절경을 이루고 있다.
마치 설악산의 한 토막을 갓다 노은듯 산은 깊고계곡은 수려하다.
심산유곡 곳곳에 봄이 되면서부터 다투어 피고 지는 온갓 초목 들은
식물학적 존재가 가히 국보급인 것들도 한두가지가 아니어서 이산에
더한 애정을 쏟게도한다.
천연기념물 후보생이며 세계적인 휘귀수인 망개나무의 군락지 며 멸
종위기에 처한 큰양초라던가 한국특산인 뻐꾹나리고란초 같은 휘귀실
물들이 이 산속에 있다는 사실 그 자체가 우리 후손들에게는 더없이
소중한 보물이 될 것이기에 그러기에 이산의 중후함도 더하게 되
는 것이라 하겠다.
n 내연골 28경
기록에 의하면 옛부터 내연골에는 28경을 정하여 그이름을 멋지게 지
어 두었다.
협암.병풍암.삼구암.상생폭.기화담.기화대.일동암.승암 견성대.승선
교.향자대.보현폭.삼보폭.습득대.용바위.잠용폭.무풍계.관음굴.감로
담.관음폭.비하대.선일대.연산폭.학소대.은폭.복호폭.실폭.시명폭
을 든다.
유명한 12폭포는 아래와 같다.
상생폭포.보현폭포.삼보폭포.잠룡폭포.무풍폭포.관음폭포.연산폭포.
은폭포.복호1폭포 복호2폭포.실폭포.시명폭포.
협암(峽岩)
산문을 나와서 계류를 따라 1Km 정도 오르다가 문수암 으로 오르는
갈림길에서 숨을 돌리며 절벽아래로 내려다 보면 작은 폭포가 있고
그 옆이 협암인데 옛길은 이바위덤 옆으로 조심 조심 오르게 되어 있
었다.
몸을 옆으로 붙여서 겨우 오르내리던 길목 바위 덤인데 옆바우 즉 협
암 이라 이름 하게 되었다.우묵 패인 바위굴 속에는 기원하는 이들의
흔적이 끊이질 않았으며 옛날 거금을 희사하여 산행도로를 닦아서 관
광객의 안전과 편익을 도모했던 이설산당(李雪山堂)과 김설산당(金雪
山堂)의 송덕비가 남아있다.
협암
이설산당.김설산당.
병풍바위
협암 서편으로 신구산(현재 천령산)의 한 자락이 바위산으로 펼쳐 있
어 마치 계곡 을 병풍으로 가로질러 막아둔 것 같은 풍광이 나타난
다.그아래 발치 가까운 곳에 거대한 바위 하나 덩그렇게 있고 그 그
늘 속에 부처를 모셔두었는데 이를 부처바위 불암(佛岩)이라 이름 하
였고 지금은 흔적만 남아있다.
병풍바위
상생폭과 기화대(妓花臺) 기화담(妓花潭)
병풍암을 돌아 둔덕에 오르면 계곡이 활짝 열리면서두줄기 물기둥이
소리치는 상생폭포가 나타난다.이 폭포의 남쪽 바위더미를 기화대라
하고 이 폭포수가 이룬못을 기화담이라 하는데 옛날 풍류객이 이 기
화대 위에서 기생과 더불어 가무음곡을 즐기다가 취한 기녀가 춤을
추다 실족하여 적벽아래로 떨어져 이못에 빠져 죽게되는 사고가 있은
이후로 기화대(妓花臺) 기화담(妓花潭)이라 칭하게 되었다.
상생폭포
기화담(妓花潭)
기화대(妓花臺)
일동석(一動石)
기화대에서 문수암 쪽으로 산기슭을 유심히 살피보면 50여m 거리를
두고 두개의 우뚝히 �은 바위를 볼수있다.
동편은 직경 1.2m 바위가 흔들리면 움직인다.하여 일동석이라 부르
고 있고 서편으로 200여보 거리에 있는 선바위는 마치 처사스님 형
상 같다하여 승암(僧岩)즉 중바위라 불린다.
보현폭포(普賢瀑布)
칠성등 아래 보현암을 저만치 쳐다보면서 가파른 언덕길을 오르기 직
전 멀리 선일대가 있는 절경이 보이기 시작하여 발길을 멈추게 한다.
바위평풍을 둘러쳐 가린듯한 곳에 나즈막하나 줄기차게 흰 물줄기가
쏟아지는 그림 같은 경치가 선일대의 절묘한 원경과 조화를 이루면서
길손을 반긴다.여기가 바로 포현폭포이다,
보현폭포
삼보폭포(三洑瀑布)
보현폭에서 물길을 따라 100여보 오르면 아담한 쌍생폭 이 하나 나
타난다.원래는 세줄기로 낙하하던 폭포였기에 삼보폭이라 전해진다.
삼보폭포
잠용폭포(潛龍瀑布)
용이 물 속에 숨어 노닐다가 여기서 선일대로 기어오르며 마침내 승
천했다는 전설을 간직한 폭포로서 삼용추의 제일 아래 폭포다 주변에
는 용이 꿈틀대면서 바위를 꿇기도 하고 가르기도 한 흔적들이 남아
있다.
잠용폭포
무풍계(無風溪)
잠용폭포를 기어 오르면 거대하게 노출된 암반의 움푹 패인 바람 한
점 없는 곳에 나지막이 폭포를 흘리는 정경이 나타난다.
지형상 바람을 타지 않는 곳이라 하여 이름지어진 것이다.
무풍폭포(무풍계)
감로담(甘露談)과 관음폭포(觀音瀑布)
무풍폭을 올라서면 깎아지른 듯 솟구친 바위더미 비하대가 마주하고
그 아래 괴괴 한 모습의 작은 동굴이 뚫린 바위턱 옆으로 두줄기의
우렁찬 폭포수가 흘러 내린다.
한방울만 마셔도 온갖 괴로움이 사라지고 산 사람은 장수하고 죽은
자는 부활 한다는 천상에서 이슬이 내려 고여 있다는 신비의 세계 도
리천의 감로수에 비유 하여 감로담이라 칭송하였다.
관음 즉 관세음보살이 금방 이라도 나타나 중생들의 간절한 소원을
들어주시기라도 할듯한 신비롭고 웅장한 분위기를 갖는 곳이다.
30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이 관음굴 속에서 종종 수도승을 볼수 있었
다.
감로담
관음폭포
연산폭포
관음폭 뒷등으로 올라 구름다리를 건너가면 백척 깎아지른 바위벽 학
소대와 비하대 사이로 물보라를 흩날리 며 비스듬히 쏟아지는 우두머
리 폭포가 나타난다.
내연산 12폭포를 대표한다는 뜻으로 연산폭이라 이름한것이다.
여름철 아침9시 전후하여 폭포에 피어오르는 무지개는 감동적인 경관
이라 하겠다.
연산폭포
비하대(飛下臺)
감로담 서편에 깎아지른 듯 높이 솟구친 바위더미를 말한다.
이름 그대로 신선이 학을 타고 내려온 자리라 하여 지어진 명칭이다.
학은 연산폭의 북쪽 수백길 암벽 학소대(鶴巢臺)에 둥지를 틀고 살게
하였으며 신선은 잠용폭 남쪽 선일대로 올라 암자를 짓고 살았다는
전설에 따라 지어진 이름이다.
비하대 상부에는 바위틈을 비집고 뿌리내린 500살은 넘어보이 는 노
송 두 그루가있다.
조선 영조조의 대화백이요 한국화의 거장 겸재 정선의 신선도 한폭이
남아 있는데 그 소재로 이 소나무들이 삽입되어 있음을 본다.
참으로 귀한 살아있는 문화재라 하겠다.
대산(大山)의 비하대(飛下臺)라 새긴 글이 바위머리에 남아 있다.
선일대
음폭포(陰瀑布)
폭포의 느낌이 음산하다 하여 혹은 여성 성기를 닮았다 하여 음폭이
라 부른다.용이 숨어 산다하여 흔히 숨은용치라고도 하는데 이에 은
폭(隱瀑)이라고도 기록되어 있다.
이폭포 위에 사람형상의 큰 바위가 우뚝 서 있는데한 산과 습득 두
스님을 연상케 하니 한산대와 습득 대가 아닌가 추리하여 본다.
음폭포
견성대
음폭을 지나서 복호폭으로 가는 길에 폭포는 없으나 바위덤의 어우러
진 경관이 비범한 지대가 있다.물웅덩이 가 깊고 고요하여 가히 마음
속 까지 비춰지는 듯한 느낌이 드니 여기가 견성대 가 아닌지 추리해
본다.
=====그림====
복호1.2폭포(伏虎瀑布)
옛날에는 호랑이가 이 부근을 출몰하였다는데 흔히 이폭포 바위더미
에 올라 엎드려 있었기 때문에 지어진 이름이다.두개의 복호폭을 지
나 산길에 들어 실폭포로 가다보면 잘피등이 있는데 이 지명은 범을
잘 피해서 다녀라는 경고의 뜻으로 지어진 이름이 나닌가 추리해 본
다.
복호1폭포
복호2폭포
실폭
마치 실타래를 풀어 드리운 듯한 가늘고도 높은 폭포를 이름한다.
실폭만이 주 계곡에서 떨어진 가지 계곡에 위치 하고있다.
실폭포
시명폭포(時明瀑布)시명리 어귀에 놓인 마지막 폭포다. 그리 높지 크진 않으나 풍광이
한적하고 아름답다 시명리란 지명은 단종 사회에 연루된 양반들이 이
곳에 숨어 들어와 살면서 밝은 세상이 오기를 기다리는 뜻에서 지어
진이름이라 전한다.
30여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20여 가구가 살고 있던마을이다.
시명폭포
샘재
정확한 명칭은 알수가 없으나 상옥마을이 옛날에는 아주 깊은 산골이
라 모든 생필품은 현지 조달이 가능하지만 생선류 조달 및 특히 소금
의 조달 이 필요 하여 샘재 로 물물 교환 한것으로 추정되며 새벽에
마을에서 출발하면 샘재에 올라서면 날이 샌다하여 샌재가 현재 샘재
로 불리운다고 구전으로 내려 오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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