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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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탄풍경 2010. 7. 3. 23:39

 

 

 

설악 가(雪嶽歌)

 

1969년2월14 일 설악산의 "죽음의 계곡"이라는 곳에서

히말라야의 에베레스트 정상을 오르고자 훈련을 하던 젊은 산악인 10명이

눈사태로 목 숨을 잃는 큰 사고가 있었답니다.

 

그때의 사고 가 교훈이 되어 오늘날의 등산학교를 설립하는 계기가 되었고요..

또 산을 좋아 하는 이정훈(경기도 하남시에서 치과개업중) 이라는 분께서

산악인들에게 는 불후의 명곡인 "설악가"를 작사,작곡하는 동기가 되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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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의 능선 중에 가장 아름다운 설악산 공룡능선에서 갈라져나간 천화대의 ‘석주길’.

<1969년대 고(故) 엄홍석, 신현주 두 분의 이름 끝자를 따서 명명된 것입 니다.>

 

설악산에 하 늘에서 꽃이 내려와 앉았다는 천화대(天花臺)에

 

석주길 이라 고 하는 릿지코스가 있습니다.

 

"천 가지의 꽃이 피어있다" "바위에 피어있는 꽃" "하늘 꽃"이라는 숱한 설을 남긴 천화대는

 

그 만큼 아름답다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 입니다.

 

천화대는 비 선대에서 철 계단을지나 천불동 계곡방향으로 가다보면

 

우측에 초입 이 시작됩니다.

 

끝 지점인 공 룡능선에서는 비선대 방향으로는 동북쪽으로 연결되어 있고

 

외설악을 대 표하는 30개 이상의 크고 작은 봉우리를 넘어야하는 구간 입니다

 

희야봉에서는 범봉을 앞에 두고 설악골과 잦은바위골 로 길이 갈라지고

 

맞은편으로는 범봉과 공룡능선으로 이어집니다.

 

특히 잦은바 위골에 다다르면 50m,100m 폭포는 장관을 이룹니다.

 

천화대에서는 화채봉과 동해바다가 보이며 북동쪽으로 울산암이 바라보이는 곳 이기도 합니 다.

 

풍광과 조망 또한 좋아서 등반 내내 발길을 멈추곤 합니다.

 

이중 설악골 에서 범봉사이에 성곽과도 같은 침니로 이어진 리지구간이 석주길 입니다.

 

석주길에 얽 힌 가슴저린 이야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당시 요델산악회송준호, 엄홍석, 신현주 세 사람은 서로 자일 파트너였고

 

동시에, 절친 한 친구이자 연인 사이 이었다고 합니다.

 

어느 날 송준호는 사랑보다는 우정을 지키기 위해 다시 말해

 

세 사람의 순 수하고 소중한 관계를 지키기 위해

 

엄홍석신현주 의 곁을 홀연히 떠납니다.

 

송준호가 떠난 얼마 후 엄홍석신현주 는 연인 사이가 되었고,

 

두 사람은 설 악산 천화대 천당폭으로 빙벽등반을 하러 갑니다.

 

그러나 빙벽 을 오르던 중 신현주가 그만 실족을 하자

 

당시 빌레이( 확보)를 보던 엄홍석은 연인인 그녀의 추락 거리를 줄이기 위해서

 

빙벽 아래로 자신의 몸을 날립니다.

 

그러나 빙벽 에 설치한 확보물이 하중을 견디지 못했고

 

두 연인은 한 자일에 묶인 채 추락하여 목숨을 잃고 맙니다....

 

그 후 두 친 구를 먼저 보내고 혼자 남은 송준호

 

악우인 엄홍석신현 주의 넋을 달래기 위해 

 

1968년 7월 지금의 천화대 석주길을 개척하며

 

엄홍석의 이름 끝 자인 "석"신현주 의 끝 자인 "주"를 딴 석주길이라는

 

길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산악계에서는 처음 길을 개척한사람에게 "명명(命名)권" 을 주게 되는데

 

송준호에게 명명권을 주어 두 사람의 석주길 이라는 길이

 

설악산 천화 대에 생기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석주길’이라고 새긴 동판을 만들어 천화대와 만나는

 

바위봉우리의 이마 부분에 붙여 두 사람의 영전에 바쳤습니다.

 

하지만 송준호 역시 1973년 초 토왕폭을 단독으로 오르다 가 실족하여

 

먼저 간 두 친구의 영혼을 뒤따르게 되고

 

그의 시신은 그토록 사랑하던 친구인 엄홍석신현주의 곁에 뭍히게 됩니다.

 

그렇게 석주길의 신화가 설악산에 태어났던 것입니다.....

 

그런데, 1973 년 새해 첫 날밤 등반하루 전 그는 엄홍석신현주에게 마지막 편지를 남깁니 다.

 

죽음을 예감 이라도 한 듯 번지 없는 주소로 엽서를 보냅니다.

 

받는사람 "석주 귀하" 주소는 "벽에서 노루목" 보내는 사람 "준" 그것이 전부인...

 

한편 서울에 서는 토왕성폭포 등반을 마치고 돌아오겠다던 송준호 의 애인은

 

1973년 1월5 일 오후2시 서울 중앙극장에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상영을 앞두고

 

그를 기다립 니다.

 

그가 나타나 지 않자 뇌리에 스쳐오는 송준호를 생각하며 극장가를 떠납니다.

 

송준호는 그녀가 짜준 목도리와 장갑 모자를 가슴 에 품은 체 토왕폭에서

 

그녀의 곁을 영원히 떠나게 되었습니다.

 

송준호는 토왕폭을 등반 후 돌아와 그 녀와 함께 스위스 등산학교를 유학 한 후

 

결혼하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 해 가을 산악회에서는 추모등반을 설악산 용아장성에서 이루어지게 되었는데

 

동판은 제14 봉에 부착했습니다.

 

애인은 동판에 송준 호에게 마지막 편지를 썼습니다.

 

"고인의 뜻대로 강하게 살아가겠다고".

 

그 후 1974년 1월2일 1주기가 되던 해 송준호와도 산 친구 는 설악의 노루목을 찾았습니다.

 

그는 산 친구 인 송준호에게 절을 하며 약속합니다.

 

그녀와 함께 살아가겠다고...

 

그 이듬해 그 들은 결혼해서 그들의 꿈이었던 목장을 이루고 살아가면서

 

설악가처럼 굽이져 흰띠두른 능선길 따라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는 지금 설 악산 노루목에 엄홍석 신현주와 함께 묻혀있으며

 

이들 세사람 의 충혼비는 이러합니다.

 

"시간(時間)과 존재(存在)의 불협화음으로 공간을 활보하고 있는 악 우(岳友)들이여!

 

철학적 경이로써 모둠된 그대들의 자취는 훗날 이 인자한 산정을 찾 는 이들의 교훈일 것이다.

 

추억을 침묵으로 승화시킨 사람들, 그 대담한 의지로 회생하리 라."

 

설악가는 세 사람의 아름다운 사랑과 우정을 그리며 지어 졌다고 합니다.

 

지금은 구전 으로 대학 산악부에서 많이 불려지고 있습니다.

 

<난 바람 넌 눈물>로 가요계에 데뷔한 산악인 가수 신현대님의 목소리로 들어 봅니다.

 

마지막 3절이 찐하고 슬프네요.

 

송준호가 죽 은 친구(엄홍석, 신현주)를 생각하는 내용인 것 같습니다.

 

 

< 설악가 - 신현 대>

1.

굽이져 흰띠두른 능선길 따라, 달빛에 걸어가는 계곡의 여운을

내어이 잊으리요 즐겁던 산행을 잘있거라 설악아 내다 시 오리니

2.

저멀리 능선위에 철쭉꽃 필적에 너와나 다정하게 손잡 고 걷던길

내어이 잊으리오 꿈같던 산행을 잘있거라 설악아 내다 시 오리니

3.

저높은 봉우리에 백설이 필적에 나는야 생각난다 친구 의 모습

내어이 잊으리오 꿈같던 산행을 잘있거라 설악아 내다 시 오리니

 

 

 

 ?~~~설악가 / 신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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